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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흥미로운 한민족의 육식문화 변천사-‘한우문화 이야기’

◇고대 한민족의 육식문화=고대사회에서 소는 농경과 이동에 필요한 힘은 물론 고기를 제공하는 고마운 가축일 뿐만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기에 신성시되었다.

 

샤머니즘에 근간을 둔 수렵축제인 제천행사를 거행할 때면 수렵물들과 소를 제물로 바치는데, 소 발굽은 전쟁의 승리를 점치는 중요한 도구로 특별히 관리되었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맥적은 양념한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통으로 구운 뒤 각자 칼로 베어 먹는 음식으로 한민족의 구이 요리법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와 신라에서 맥적류의 통구이 육식문화가 발달했고, 신라의 경우는 젓갈이나 육포형태로 육식을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고려시대 육식문화=고려 전반기는 살생을 꺼리는 풍조 때문에 도축이 원활하지 않았다. 궁중의 연회에서는 육류를 대신해 쌈 채소, 과자류, 과일과 차가 주요 음식이 되었고, 소고기와 우유는 일종의 보양식으로 간주되었다. 몽골문화의 유입은 고려에서 육식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도축기술의 발달과 소 사육두수의 증가로 고려 후반기에 오면서 고기는 소고기를 가리킬 정도로 소고기 소비 풍조가 확산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샤머니즘의 약화와 통구이 요리의 복잡성으로 인해 소고기를 분절해 꼬챙이에 꿰어 굽는 ‘설야적’으로 유행이 바뀌었고, 이는 조선시대의 너비아니로 발전되었다.

 

한민족의 주식인 국도 몽골문화의 유입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고려 전반기에는 주로 채소국을 먹은 반면, 후반기에는 맹물에 소뼈와 부산물을 끓인 곰탕이나 설렁탕이 유행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고려 후반기 음식문화의 주요한 특징은 오늘날에도 커다란 변화 없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조선, 한우 육식 문화=조선왕조는 건립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우금령(牛禁令)을 실시하였으나,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고기에 집착하였다. 심지어 소고기를 먹지 않는 자들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특이한 식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핀잔을 듣거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는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갖은 양념을 한 소고기를 구워먹는 모임인 난로회가 인기를 끌었다. 난로회는 주로 겨울의 첫 달인 음력 10월에 열렸는데,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왕까지도 신하들과 더불어 난로회를 즐기기도 하였다.

 

일반 서민들은 구이 등을 통해 소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기보다는 보다 값싼 내장 등의 부산물을 이용하여 국이나 탕을 끓여 먹었다. 이에 조선 말기에는 소의 모든 부위를 국물로 만들어 먹는 국밥문화 즉, 탕반문화가 유행하였다.

 

◇근대 이후 한국의 육식문화=근대 음식점의 탄생을 견인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음식은 설렁탕이다. 근대인들이 설렁탕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소고기, 국물과 밥을 좋아하는 한민족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가 군용 통조림을 만든 후에 버린 부산물을 가져다가 설렁탕을 만들었기에 비교적 싼 가격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한국 전쟁 이후 소 사육두수의 급격한 하락과 식량난이 겹치면서 한우의 고급육을 사용하는 숯불 불고기 대신에 하급부위를 양념해 육수를 부어 먹는 육수 불고기가 크게 유행하였다.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중산층들은 설렁탕이나 육수 불고기 대신에 한우 고급 부위를 숯불에 구워먹는 방식을 크게 선호하고 있다. 이렇듯 고대의 맥적-설야적-너비아니-한우구이로 이어져 온 한민족의 한우 숯불구이 선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한민족 육식문화의 정점에 놓여 있다.

 

◇한우의 의식문화=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하면서 한우는 우리네 정신과 문화, 풍습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이야기와 지명, 속담이나 관용표현, 그리고 민속신앙에도 한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이 담겨져 있으며, 또한 인간 고유의 특성과 능력을 담아 창조하는 예술문화에서도 소는 등장한다.

 

한우는 단순히 ‘동물’이나 ‘가축’의 의미를 넘어 인간과 동일시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따라서 소의 상징성과 이미지가 반영되어 춤이나 노래, 그림과 놀이 등으로 표현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소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언어와 예술로 대표되는 민족 문화의 저변에는 언제나 소, 한우가 있었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 역시 한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민경천 /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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